몇 년 전 기회가 있어 미국의 선진 학교를 방문해 교육과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의 교육과정은 기본, 심화, 명예 세 가지 코스로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선택권은 오히려 우리가 더 넓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선택과목을 열어 두고 학생이 자유롭게 고르게 하는 것이 정말 학생에게 더 좋은 교육일까 하는 것입니다.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더 어울리는 쪽은 어느 쪽일까요.
교육과정을 짜는 자리에 있다 보니 이 질문을 자꾸 붙잡게 됩니다. 선생님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선택권이라는 멋진 이름 뒤에 숨겨진 책임회피가 느껴져요. 교육과정을 짠다는 것은 학생들의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는데,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 뒤에 교묘하게 숨어서 교육"과정"의 책임을 학생들에게 떠넘긴 느낌입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평가 시스템은 바꾸지 않았어요. 여전히 등급제로 가릅니다. 14명일때와 15명일때 등급 인원수의 비율이 크게 달라지는데, 선택 교과목을 이수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선택한 사람들끼리 또 경쟁을 해서 등급을 얻어 대학을 가야하는 이 모순으로 인해 고교학점제의 진짜 의미가 가려진다고 봅니다. 저는 선택권을 모두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할 여유가 정말 없습니다. 아무리 교육과정 설명회를 많이 갖는다고 해도 학생들은 점수 따기 좋은 과목을 선택합니다. 등급이 잘 나올 것이라 기대되는, 내신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과목을 우선 선택합니다. 저희는 외고인에 이제 내년이면 1,2,3학년 모두 고교학점제라 이번에 많은 개편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학생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설명회도 많이 갖지만 그 이전에 선생님들의 수업준비 부담이라는 큰 산이 앞에 놓여 있고, 시수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일로 인해 교사들 사이의 불필요한 신경전도 발생합니다. 고교학점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담아낼 수 있는 진짜 교육"과정"의 틀은 국가에서 마련해주지 않고 서울대가 어떻게 하는지 모든 대학이 눈치보며 정하는 이 현실에서 단위학교는 교사들 특유의 적응력으로 이 변화들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결론이라면 저는 이렇게 학생들의 선택권을 모두 열어놓고 상대평가로 등급을 산출하는 이 방식에 전혀 공감도 되지 않고 동의도 되지 않아요.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또 적응하고 어찌어찌 이 안에서 교육적 효과를 얻어내겠죠? 그게 우리 교사들의 무기니까요.
자유로운 개설과 학습을 도우려고 했다면 진로, 융합 선택의 평가가 3단계 절대평가 (최소한 5단계 절대평가) 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ㅠㅠ 수학과제탐구를 상대평가를 어떻게 하나 생각하면 좀 깜깜하거든요... 상대평가인 이상 인원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 학교의 편제와 수강인원이 대학에 제공될 때 학교가 어떻게 평가되는지도 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이고, 또 한편 고입과 관련해서도 요즘은 편제표를 보고 학교를 고르기 때문에 학교 알리미 등에 제공되는 우리학교 편제표가 어떤지도 신경을 써야 하고요. 결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고등학교 안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없고 고입과 대입 사이에 껴서 양쪽의 눈치를 다 봐야 하니 이게 교육적인게 맞나? 저도 매순간 마음이 복잡해요. 또 학생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꾸준히 학생들에게 적극적임, 도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선택의 결과는 (제가 담당 교사여서 더 그럴 수 있지만) 회피 성향이 매년 더 커지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큽니다... 자유로운 선택 안에서 오히려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는건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이것저것 궁리하고 만들어보면서 정말 진짜 최선을 다해서 운영하고 상담했는데... ㅠㅠ 정말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정도로 열일했는데... 결과는 열심히 하나 그렇지 않으나 비슷한가? 싶기도 하고... 알면 알수록 어려운 업무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