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시제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두바이의 한 회사가 눈에 착용하는 렌즈에 정보를 표시하는 기능 정도를 탑재했다는 소식. 앞으로는 AI와 연결하여 사용자가 보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안내하는 기술까지 구현하겠다는 소식도. 물론 아직은 시제품 단계이며 상용화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제 이런 기술이 마냥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에 말을 걸어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조차 불과 몇 년 전에는 낯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소식은 불안한 질문을 물고 왔다.
이제 지필고사를 치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며칠 전 3학년 아이들의 지필평가를 감독했다. 시험지를 배부하고 부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지켜봤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답안지를 거두었다. 교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학생들이 어떤 지식을 습득했고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여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우리는 이것을 평가라고 부른다. 그런데 학생들이 AI 렌즈를 착용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면? 학교 밖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즉각 답을 얻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AI의 조언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오면 렌즈를 벗어야 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지식만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본다. 2022년 GPT3.5의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열받아 맥북을 날렸다는 대답을 보고 비웃은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GPT4o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AGI에 버금갈 것이라는 GPT5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왕뚜껑이어서 실망한 지 1년이 채 안 돼서 fable5에 소름 돋았던 것도. '지금 당장'도 아니겠으나 '여전히 먼 어느 날'이라고 볼 수 없다. - 나는 국어교사다. 국어과에서는 단순한 지식의 재현을 넘어 실제 언어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하게 다룬다. 화법을 예로 들어보자. 공감적 듣기의 방법을 묻는 문제는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AI가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용 문제를 내면 될까?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는 상황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반응하는 말을 작성하라고 하면? 그 역시 AI가 훨씬 능숙하게 작성해 줄 것이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할수록 AI는 오히려 더 적절한 반응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직접 역할극을 하라고 하면 해결될까? 실시간으로 발화를 추천해 주는 AI가 일상화된다면 그땐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문학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표현법을 사용하여 정서를 드러냈는지 답하는 것은 이미 AI가 잘하는 영역이다. 2년 전 쯤만 해도 GPT는 한국 문학 병x이야 했던 게 무색할만큼. 그렇다면 그 표현법을 활용하여 직접 작품을 창작하게 하면 될까? 아마 학생들은 AI에게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AI를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활동에 그 어떤 의미도 없다...는 건 좀 논리비약일지도 모른다. 학생의 독립적인 언어 능력을 진단하는 것엔 분명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능력이 실제 삶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얼마나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AI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일상인 사회에서 굳이 AI를 배제한 상황의 문제 해결 능력만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평가일까. -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은 과연 자기 자신의 사고를 얼마나 갖게 될까? AI를 둘러싼 논의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AI가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 맞게 응답을 제공할 것이므로, 오히려 개인에게 최적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애초에 그 개인의 취향과 성향은 어디에서 형성되는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알고 있지 않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실패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조금씩 자신을 형성해 간다. 그 과정에서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인간의 가치관이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 그 환경을 구성하는 주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아이들은 유튜브 쇼츠를 비롯한 각종 플랫폼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고 있다.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경제적 성공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기는 태도도 쉽게 발견된다. 유행하는 말이나 행동이 순식간에 퍼지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밈으로 대체된다. 물론 이 모든 변화를 유튜브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유튜버를 꿈꾸는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 역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을 동경하고, 무엇을 재미있다고 느끼며, 어떤 삶을 성공한 삶으로 받아들이는지에 플랫폼이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AI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쇼츠가 내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예측하여 보여준다면, AI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까지 제안할 수 있다.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부모님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설명해 준다. 이제 인간은 그런 것을 맡기는 메타 프롬프트 공유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가 AI의 제안을 반복하여 받아들이면, 그 제안은 점차 익숙한 나의 반응이 될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취향과 성향을 AI가 다시 학습하여 나에게 맞춘다면? 처음에는 AI가 나를 닮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AI의 판단과 표현을 닮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에게 최적화된 AI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AI에 의해 최적화된 개인이 등장하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이 자못 두렵다 AI는 얼마든지 사람마다 다른 말을 추천할 수 있을 테니까 걱정말라고? 글쎄... 각자 다른 취향을 갖게 되더라도, 그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AI가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 더 걱정스럽다. 나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는 것들이 실은 AI가 학습한 데이터와 추천해 온 선택의 결과라면, 나는 어디까지 나 자신인 걸까. 물론 인간은 원래 타인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 유명한 자크 라캉의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나 역시 부모와 교사, 친구와 책과 영화의 영향을 받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부딪히고, 서로 다른 관점을 접하고, 때로는 불편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스스로의 판단을 수정하기도 했다. AI는 그런 마찰을 줄여줄 수 있다. 불편한 상황에서 적절한 반응을 제안하고, 내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내 취향에 맞는 선택지를 정리해 준다. 삶은 편리해지고 있다. 더 편리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 편리함이 혹시 나 자신을 발견할 기회까지 줄여버리는 것은 아닐까. -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는 생각에 몇 가지 성격검사 웹앱을 만들었다. MBTI나 사랑의 언어 같은 것들이다. 아이들이 결과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내가 만든 도구마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검사 결과를 받아보며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재미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정말 나를 설명해 주는 것일까? 혹시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일을 또 다른 도구에 위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검사는 자신을 알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자신에 대한 결론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제법 자주 이야기해 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네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걸, 왜 좋아하게 된 걸까? 네가 옳다고 믿는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다른 사람이, 혹은 AI가 추천하는 선택을 거절할 수 있는 이유를 너는 설명할 수 있니? 어쩌면 미래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해질 부분은 자기이해가 아닐까 생각한다.이제껏 뫄뫄테스트 등으로 자신의 성격을 분류하거나 적성을 발견하는 일이 홍수처럼 범람해왔지만, 그 이상으로. AI가 아닌 척하며 많은 것을 결정해주고 조언해주는 시대에. 결국 자신의 판단과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돌아보고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 그런 의미에서 문학교육의 역할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작가의 표현 의도를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작품 속 인물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에 남고, 자신이 당연하게 믿어온 가치관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 경험을 정답으로 어찌 환원해야하나. 작품의 상징과 표현법을 아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문학을 이해하는 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상징을 해석하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를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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