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개별 맞춤형 수업·학생 주도성을 기른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과 agency(주도성) 다시 보기
AI·코스웨어로 학생 개인별 맞춤형 수업을 하고 주도성을 길러준다는 주장에 대한 문제 제기. 최근 연구에서는 agency(주도성·주체성·행위자성)를 개인이 소유한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캐런 바라드 같은 철학자는 우리가 세계와 얽혀 있는 존재이고, 그 얽힘 속에서 관계에 응답하는 능력(response-ability)으로 agency를 해석한다. 이 관점에서는 '요즘 애들은 주도성이 떨어진다', '이 사람은 주도성이 뛰어나다'는 말을 조심하게 된다. 매일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도 그를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보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형편이 어려운 조부모와 살고 동생을 돌보며 하교 후 일을 하는 맥락이라면, 학교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agency를 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이 agency를 발현하는 수업을 하려면 우리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내 욕망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묻는 과정이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 AI나 코스웨어가 들어와 학생을 돕는다면 의미가 있다. 그런 것 없이 기술만으로 개별 맞춤형 수업과 주도성 함양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건 사기에 가깝다는 의견. 덧붙여 비에스타는 교사를 '학습의 촉진자'로만 두는 관점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학생이 세계를 만나 자기 욕망을 성찰하게 하려면 분명한 강제성이 필요하고 그것이 좋은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밀기(push)와 당기기(pull)가 함께 있어야 한다.
선생님들의 답 1개
학생의 욕망을 인지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agency조차 가르쳐야 따라온다고 본다. 고차원적 학습자에게도 드릴링이 필요한 영역이 있고, 그 부분에서 자율성의 선을 잡아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불안한 건 그 선이 없기 때문이다. 훈련된 역량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