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AI를 활용해서 학습을 하면, 학생들의 '깊이 읽기'는 안녕할까요? (feat. 스크린 열등 효과) 몇 년 전 교육부에서 AI 디지털교과서(AIDT) 사업을 밀어붙일 때, 저는 이 사업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참 많은 반대의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크린이 읽기에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 태블릿이나 노트북 같은 '스크린'이 교실의 주된 읽기 매체가 되었을 때, 아이들의 읽기와 사고 과정이 얕아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풍경이 또 달라졌습니다. AIDT 사업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되었지만, 이제는 생성형 AI가 교실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으니까요. 우리 도름스 선생님들만 봐도 학생들과 AI로 수업하며 새로운 시도를 참 많이 하십니다. 저 역시 그 가능성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의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학생들이 AI와 대화하고 자료를 읽는 행위, 교사가 바이브코딩으로 만든 학습 앱을 활용하는 행위 역시 여전히 '스크린'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종이로 글을 읽는 것보다 스크린으로 글을 읽을 때 주의력이 낮아지고, 읽은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 개인적인 경험인지, 어려서부터 스크린과 친숙한 우리 학생들은 종이든, 스크린이든 매체가 읽기에 미치는 영향이 덜할지 궁금했습니다.

마침 과학 교양지 《스캡틱》 47호에 인하대 국어교육과 장성민 교수님이 쓰신 〈종이냐 스크린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글이 실려 반갑게 읽어보았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인지심리학과 교육심리학계가 연구해 온 결과는 꽤 일관됩니다. 같은 글이라도 종이보다 컴퓨터나 태블릿 화면으로 읽을 때 이해도와 기억력이 떨어지는 현상, 이른바 '스크린 열등 효과(screen inferiority effect)'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장르에서 이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소설처럼 줄거리를 따라가는 글은 화면으로 읽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교과서나 설명문처럼 개념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구조를 머릿속에서 연결해야 하는 '정보 텍스트'를 읽을 때입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AI를 활용해 다루는 학습 자료 대부분이 바로 이런 글이죠. 왜 화면으로 읽으면 이해가 얕아질까요? 우선 우리는 평소 검색 결과를 훑고 SNS 피드를 빠르게 넘기던 습관 그대로 화면 속 긴 글을 대합니다. 위쪽 몇 줄만 꼼꼼히 읽고 아래로 갈수록 왼쪽만 빠르게 훑어 내려가는 'F자형 읽기 패턴'이 학습 상황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손으로 책 두께를 느끼고 앞뒤 페이지를 넘기며 머릿속에 전체 글의 지도를 그리는 '공간적 기억'도 태블릿에서는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어떤 글을 읽고 이해할 때, 평소에 우리가 그 글이 담긴 매체를 어떤 습관으로 사용했는가와 글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사용하는 체화된 인지가 중요한 것이죠. 제가 이 글을 읽으며 교사로서 가장 서늘하게 느낀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해의 과신'과 '격차의 심화'입니다. 스크린으로 글을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이해한 것보다 더 잘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 "내가 이 부분을 정말 이해했나?"라고 되묻는 메타인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죠. 스크린은 독자에게 '이 정도면 다 읽었다'는 신호를 너무 빨리 보낸다고 합니다. 생성형 AI를 쓸 때를 떠올려 봅시다. 프롬프트 한 줄이면 AI가 복잡한 개념도 매끄럽게 요약해 화면에 띄워 줍니다. 학생들은 그 요약문이라도 제대로 읽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그 정돈된 화면을 눈으로 한 번 훑고는 '아, 나 이거 알겠다' 하고 창을 닫아 버리기 쉽습니다. 게다가 흔한 기대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쓴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해서 화면 읽기에 저절로 적응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읽기 능력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스크린 열등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납니다. 교실에 화면 중심의 읽기 환경이 늘어날수록, 원래 읽기에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더 큰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자칫하면 AI와 스크린 환경이 교실 속 학습 격차를 더 벌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종이책만 고집해야 할까요? 장성민 교수는 중요한 것이 매체 자체가 아니라 '읽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화면으로 읽더라도 어려운 내용을 충분히 연습하게 하거나, 읽은 뒤 핵심 내용을 스스로 떠올려 보게 하는 활동을 추가하면 화면 읽기의 불이익이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결국 우리가 학생들과 AI를 활용해 수업할 때 반드시 넣어야 할 과정도 바로 이것입니다. AI가 화면에 띄워 준 답변을 눈으로 읽고 끝내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 화면을 덮고 방금 읽은 핵심 내용을 빈 종이에 스스로 인출해 보기
- AI가 요약해 준 정보 중 중요한 부분을 다시 점검하고 내 언어로 메모 남기기
- 앞서 읽은 내용과 지금 내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손으로 구조화해 보기
태블릿을 활용한다면 보다 의식적으로 의식적인 '인지적 브레이크'를 수업 설계에 꼭 심어 두어야 합니다. 매체는 그저 정보를 나르는 투명한 통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 환경입니다. 교실에 AI를 적극적으로 들이는 우리일수록, 화면 앞에서 아이들의 '깊이 읽기'를 어떻게 지켜낼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은 AI 활용 수업에서 아이들의 얕은 읽기를 막기 위해 어떤 장치를 두고 계시나요? 참고 문헌
- 장성민, 「종이냐 스크린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스켑틱》 47호 「읽기의 과학」, 68~79쪽 (https://skeptic.co.kr/@kh1278/69?gId=32284)
- 칼럼이 인용한 원 연구 - Delgado, P., Vargas, C., Ackerman, R., & Salmerón, L. (2018). Don't throw away your printed books: A meta-analysis on the effects of reading media on reading comprehension. Educational Research Review, 25, 23–38. - Ackerman, R., & Goldsmith, M. (2011). Metacognitive regulation of text learning: On screen versus on paper.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Applied, 17(1), 18–32. - Salomon, G. (1984). Television is "easy" and print is "tough".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76(4), 647–658. - Lauterman, T., & Ackerman, R. (2014). Overcoming screen inferiority in learning and calibration. Computers in Human Behavior, 35, 455–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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