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잡무를 AI에 떠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 글: 대니얼 벅(Daniel Buck) | Education Week 오피니언 | 2026년 3월 18일 학생이 교실에서 AI를 써야 하는가는 뜨거운 논쟁거리다. AI가 학습을 끌어올리고 사회 진출을 준비시켜줄까, 아니면 디지털 의존과 인지 능력 퇴화로 이어질까? 그런데 교사의 AI 활용에 대해서는 그리 나쁠 게 없다는 쪽으로 점점 의견이 모이고 있다. 솔깃하고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틀렸다. 교사가 수업 외 업무에 주당 29시간이 넘는 시간을 쏟는 만큼, 그 일을 AI에 넘기고 더 중요한 수업에 집중하자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다. 실제로 2023년 미국 교육부 보고서는 학생 글에 피드백을 주는 일부터 학급 운영 계획을 짜는 일까지 교사가 AI를 활용하라고 권했고, 2025년 행정명령은 "시간이 많이 드는 행정 업무"를 줄이려는 목적 등으로 교사가 "교실에서 AI를 활용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일을 AI에 떠넘기는 것은, 수업 과정을 간소화해줄지는 몰라도 중대한 실수다. 사소해 보이는 그 업무들이야말로 교직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곁다리 일이 아니라 가르치는 일 그 자체다. 몇 가지 예를 보자. 교육자 990명을 대상으로 한 Education Week 설문에 따르면, 교사들이 AI를 흔히 쓰는 용도 중 하나가 이메일 작성이다. 한 교사는 이렇게 적었다. "대략적인 내용만 입력하면 내가 썼을 법한 이메일을 받을 수 있어 훨씬 빠르다. 직접 썼다면 15분 넘게 걸렸을 것이다." AI에게 이메일을 맡기는 게 더 쉬운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더 나은 일일까? 내가 교감으로 일할 때는 민감한 이메일을 많이 써야 했다. 문제 행동, 특수교육 지원, 화장실 사고, 따돌림, 싸움, 학대 등 온갖 사안에 관한 것이었다. ChatGPT 탭으로 옮겨가는 편이 일을 분명 수월하게 해줬겠지만, 나를 덜 유능한 관리자이자 리더로 만들었을 것이다. 잘 쓴 이메일의 바탕에는 충분한 성찰이 깔려 있다. 몇 줄짜리 글에 15분, 때로는 오후 내내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자를 두드려 넣기가 힘든 게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고 내가 하려는 말을 정확히 써내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이를테면 학생의 행동에 관해 학부모에게 이메일을 써야 한다면, 나는 그 문제를 곰곰이 따져봐야 했다. 이 학생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이 한 번의 사건 뒤에는 어떤 내력이 있을까? 특수교육 담당자를 함께 참여시켜야 할까? 앞으로 학교 리더인 나와 학부모, 교사는 각각 무엇을 해야 할까? 이메일 작성에는 시간이 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런 질문들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마련하게 됐고, 그 덕분에 학교가 마주한 문제가 무엇이든 앞으로 더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그 일을 Claude에 넘기는 순간, 나는 그 의도적인 성찰까지 함께 넘겨버리는 셈이다. 이와 똑같은 인지적 맞교환은 교사나 에듀테크 컨설턴트가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활용 사례에 그대로 적용된다. 교사가 Grok으로 시험 문제를 뽑으면, 잘 짜인 단원이나 활동의 바탕이 되는 숙고를 건너뛰게 된다. 영어 교사였을 때 나는 수업 마무리 성찰 질문 하나를 떠올리는 데도, 그날의 토론이 단원과 한 해 전체에 어떻게 맞물리는지, 내가 무엇을 왜 묻고 있는지, 학생들에게서 어떤 답을 기대하는지를 따져봐야 했다. 그렇게 미리 해둔 생각은 토론 중에 후속 질문을 어떻게 던질지, 어떤 곁가지로 들어가거나 피할지, 그날 읽기 자료의 어느 대목에 주목시킬지를 좌우했다. 가르치는 기술은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과 씨름하고 공들이는 과정에서 다듬어진다. 인지적 떠넘김을 넘어서, 교사의 AI 활용은 교실의 관계적 역학도 바꿔놓는다. AI가 학생의 과제를 분석하고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업무를 간소화"하겠다고 학생들의 글을 다 읽지 않기로 했다면, 나는 학생들과 그들의 학업적 강점·약점에 대해 훨씬 적게 알게 됐을 것이다. 한편 학생들은 사실상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닌 피드백을 받게 된다. 그런 피드백을 학생들이 굳이 읽고, 신뢰하고, 자기 과제를 끝까지 해냈을까? 교실에서 함께 학업을 나누며 맺어지는 인간적 유대는 학생의 참여와 학업 성취에 꼭 필요한 관계를 만든다. AI에 기대는 순간 그 연결이 끊긴다. AI 의존의 결과는 운동이라는 신체적 비유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운동선수가 경기에 임하는 시간은 선수 생활의 극히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체육관에서 훈련하고 연습하는 데 쓰인다. 그렇다면 기계가 동선을 뛰고 반복 훈련을 대신해서, 선수는 더 중요한 경기에만 집중하게 하면 안 될까? 그렇게 하면 근육은 퇴화하고, 몇 달간의 고된 연습으로 다져진 팀의 결속도 약해질 것이다. 운동선수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연습과 신체 훈련이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성찰과 계획에 있다. 교사가 그 일을 AI 보조 도구에 외주로 넘긴다면, 교실 공동체와 학업 성과가 빠르게 무너지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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